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국어 교과서에서 이 시를 처음 만났습니다. 그런데 시인에 대해서는 잘 몰랐습니다. 김현승 시인은 어린 시절 목회자인 부친을 따라 평양으로 이주했고 일제강점기에는 10년 동안 붓을 꺽고 침묵을 지키다가 광복 후 대학에서 가르치며 작품 활동을 했습니다. 그의 시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추구하는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한 세계를 보여줍니다. 그가 한평생 신앙적 윤리성을 추구하며 살려고 애썼는지 이런 고백에서 잘 나타납니다. “나 자신이 주일예배 시간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나의 자식들에게 엄격히 할 수는 없었다. 나 자신이 주일이면 술을 즐기는 문인들을 내 집 응접실에 불러들이면서 나의 자식들에게 금연과 금주에 엄격하기만 할 수는 없었다…..”
피아니스트가 된 막내딸은 문학지에 ‘나의 아버지’란 제목으로 아버지에 대한 추억담을 통해 생전에 가졌던 아버지에 대한 그리운 기억들을 소개합니다. “월트 휘트먼의 시구처럼 ‘창 밖에는 라일락이 찬란하게 피어있는’ 4월 어느 날 그분이 급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나셨을 때에도 나는 그 이별을 온전히 슬퍼하지조차 못했던 것 같습니다” 칼럼니스트이며 음악가인 그녀는 아버지가 가진 예술가로서의 고독을 바흐에 비유합니다. “마치 바케트 빵처럼 겉으로는 부드러운 속살의 감격을 지녔다는 점, 높은 예술혼을 지니고 그것을 생업으로도 삼으셨지만 결코 빵을 위해 구차해지지 않으셨다는 점, 처자식에 대한 애정과 의무 또한 중하게 여겼다는 면들에서 아버지와 바흐는 많이 닮으셨다.” 그녀는 어떤 유산보다 값진, 아버지가 물려주신 정신과 신앙의 힘이 가장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평생 가난을 벗하여 살았고 커피를 좋아해 ‘다형(茶兄)’이란 호를 썼던 시인은 이렇게 기독교 신앙에 뿌리를 두고 한평생 절대 고독을 추구하며 살았기에 그의 시와 삶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일치된 것이었습니다. 그의 시처럼 우리의 삶도 ‘굽이치는 바다’의 험난한 세간의 행로를 거치고 이제는 ‘백합의 골짜기’로서의 신앙적 여정을 따라 마침내 삶의 궁극적인 경지인’ 마른 나무가지 위’에 다다를 것입니다. 변한 나뭇잎 색이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는 가을의 문 앞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쓸쓸한 가을이 아니라 겸손해지는 시간이고 내적 충실의 시간입니다. 홀로 있는 시간, 그리고 마른 나뭇가지 위의 까마귀를 통해 우리의 영혼을 풍성히 가꾸어가는 가을이기를….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