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내 형은 평안하냐 하며 오른손으로 아마사의 수염을 잡고 그와 입을 맞추려는 체하매 아마사가 요압의 손에 있는 칼은 주의하지 아니한지라 요압이 칼로 그의 배를 찌르매 그의 창자가 땅에 쏟아지니 그를 다시 치지 아니하여도 죽으니라” (20:9,10)
다윗의 군대 장관이었던 요압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요압은 다윗의 도피 시기부터 솔로몬이 즉위할 때까지 이스라엘의 군대를 지휘한 군대 장관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내외란으로 가장 치열하게 전쟁을 치렀던 시기에 활동했던 위대한 장군이었습니다. 요압은 다윗의 신임을 받아 그와 평생을 지낼 만큼 다윗의 최고의 측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아들 솔로몬에게 마지막으로 유언을 남기면서 요압을 반드시 처벌하라고 합니다(왕상2:6). 다윗 일생에 가장 큰 조력자였고 수많은 업적을 세운 공로자인 요압인데 다윗은 왜 그렇게 했을까요? 요압은 여러 가지 뛰어나고 훌륭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는 대단히 야심가였고 권모 술수에 능하고 누구든지 자기에게 걸림돌이 된다고 여기면 눈 하나 깜짝안하고 살해하는 잔인하고 비열한 사람이었습니다. 본문의 아마사를 죽인 사건도 그렇지만 전에 아브넬과 압살롬을 죽인 사람도 요압이었습니다. 이런 요압의 모습은 다윗에게도 큰 위협이었습니다. 다윗은 그 행위가 ‘내게 해한 일’이라고 해석합니다. 요압의 모습을 보면 겉으로는 이스라엘을 위하고 다윗왕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 같지만 철저히 자기 중심의 순종이었습니다. 다윗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례하게 행동함으로 왕으로서의 권위를 훼손시켰을 뿐 아니라 심각한 타격을 가한 자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무고한 피를 흘린 요압에 대해 공의의 차원에서 심판을 내리는 것이 맞다고 본 것입니다.
충성도 순수한 충성이 있고 자기주장을 앞세우는 자기중심의 충성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위하는 것 같지만 그 대상은 오히려 불편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열심은 좋으나 내 판단과 내 고집스러운 자아로 열심히 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이 될 수 없습니다. 요압은 자기 주관이 너무 앞선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쓰임 받았지만 결국 버림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특별한 은혜를 체험한 사람이라 해도 자기를 삼가지 않고 다스리지 않으면 버림받을 수 있습니다. 요압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인물입니다.